말의 무게

2010. 3. 31. 00:26 from 일신상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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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적어도 한 해에 한 번만큼은 서울에 다니러 가는데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매일매일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변화가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에 들어갔던 것이 작년 6월인데 이 때가 특히 심했다. 
무슨 일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여 딱 꼬집어 설명은 못하겠는데
길에 스쳐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신산(辛酸)함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노前대통령 추모열기와 신종플루 공포,
게다가 날씨도 끈적해지기 시작했고,
경기(景氣)는 IMF때보다 더 얼었다고 하고.
그래서 그냥 요새 확실히 팍팍한가보다 그러고 말았더랬다.
그러고 말지 않음 또 어쩔 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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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극에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른다.
나한테 닥쳤을 때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제3자일 경우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쩔쩔 매다가 타이밍을 놓쳐
결국 사람이 어째 잔정이 없다느니 그런 소리 여러 번 들었다. 아주 억울함.
안 받으니만 못한 위로라는 것도 있다고 믿는 입장으로서 조심하다 보니 그게 지나칠 때가 있는 건데
한 마디로 위로도 스킬이고 난 그게 젬병인 거다.
누군가 나에게 해피엔딩에 '집착'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곱씹어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그거 말고 다른 건 내가 handle을 못하기 때문에.
그거 말고 다른 건 그냥 모래에 고개를 묻어 피하고 싶어하고,
요 며칠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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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책은 못 읽어봤고 영화는 내용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전에 한 번 봤는데
역시 나를 매혹한 건 제목.
지금 여기 하고 있는 얘기와 별로 상관없는 이 영화가 다시 떠오른 이유도 역시 제목.
다들 마음을 담아서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힘내세요~" 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건 너무나 얄팍해서 오히려 무례한 느낌.
누군가의 불행에 대한 위로의 말이 손바닥만한 블로그 포스트가 되고, 혹은 한술 더 떠 한 줄 댓글이 되고,
그게 다시 엄지손가락 그림의 추천 포인트를 받고 그러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해서 나만큼은 보태지 말아야지 했더랬다.
그래서 그냥 속보 실시간으로 좇으면서 온몸에서 에너지가 쪽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러고 있었는데
방금 구조대원 한 분마저 순직했다는 기사까지 읽고 나서는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오면서
어디 옥상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
요새는 한국 뉴스를 보면 어디 한증막에라도 들어가 앉아 있는 듯 숨이 턱턱 막힌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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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옥보살 :